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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구 앵커식 뉴스 진행, 문제 있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19세기 초 뉴욕 필하모닉을 세계적 수준의오케스트라 반열에 올려 놨다. 그의 인기는 지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연에앞서 청중에게 연주할 곡과 작곡가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해설가(commentator)형지휘자’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것도 많은 사랑을 받게 했다. 뉴스의 지휘자인 ‘앵커’도 주관적 코멘트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애초에앵커 자리는 단순한 전달자 역할로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앵커의 전형을 만든 것이 美 CBS 출신 전설적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이다.그가 앵커 역사상 최초로 보도국장 겸직을 조건으로 내건 것은 뉴스 생산 보도에 보다 깊숙히 관여하기 위해서였다.


  국내 뉴스 생산에서 앵커의 역할도 대개 그런 미국식 보도 구조와 다르지 않다. 대부분 보도국장 같은 보도국 내보직을 겸한다. 뉴스 선별, 편집과 같은 데스킹 기능에 앵커가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구조다. ‘관점이 전적으로 배제된 객관적 전달’이 앵커의존재 이유가 아님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앵커’라는 자리 자체가 뉴스 보도 전반에 의견을 게재하는 보도 지휘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입장도밝히고 클로징에서 주관적 논평으로 마무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가’의 기능은 앵커 고유의 권한이다. 다만이는 가장 기본적인 언론의 기능인 ‘권력 견제’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한에서 발휘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앵커의 한마디 한마디가전국권 방송의 영향력을 통한 정치적 자산화 될 수 있어서, 특정 정파 편향적 보도는 권한 남용이 될 수 있다.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해서 얻은 공정한 보도 지휘자의 이미지를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공익을위한 독립적 방송임을 자처하면서 결국 특정 정당, 정부 요직으로 진출한다면 과연 그의 보도와 뉴스해설이 공정 보도였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대통령 선거 당시 언론 특보에서 부터 정권 출범 이후 정부 대변인이나 여당 공천 인사까지, 앵커나 아나운서, 기자 등 언론인 출신 정치 인사는현 정권 들어 이례적으로 100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집계된 만큼 정언유착의 징후는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 정치 관련 보도나 논평을 하던 앵커나기자가 하루 아침에 정당인으로 갈아탄다면 그 전의 보도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공기(公器)로서의 언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이자 언론의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사익 추구 활동이다.


독립적 언론인으로서 앵커의 재미있는 논평, 주관적 해설은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 단, 앵커나 기자 같은 언론인이하루 아침에 폴리널리스트로 표변할 가능성이 원천 봉쇄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공직선거법에서 언론인에게 제시하는, 선거일 전 최소 90일 전까지는그 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조건을 언론사내 윤리 강령에도 명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속력 있는 제재를 가해야 한다. 냉각기 없이 정계에 진출하는폴리널리스트 명단을 언론 공개하고 그 심각성을 보도하는 등의 제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이 뒷받침된다면, 최일구 앵커 식의 재미있는 해설식 뉴스보도는 허용돼야 한다.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앵커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하며 객관적 전달자 역할만 하라고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적강압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번스타인 같은 훌륭한 보도 데스크 지휘자이자 ‘커멘테이터’로서 앵커가 기능할 수 있도록 성숙한 언론 제도·인식을만들 때다.


 


위키리크스 논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얼굴만 예쁘면 뭐하나, 마음이 예뻐야 여자지.”

 언뜻 대다수 여성을 배려하는 말인 듯 하나, 실은 그 반대다. 마음 착한순종적 여성상이 얼마나 많은 여성에게 사회적 불평등을 감내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해왔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국가 권력도 마찬가지로 ‘착한 국민’을장려해 왔다. ‘안보는 국가가 책임질테니, 국가가 말하는 안보 위협을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식이다. 국가적 행사 때 불심 검문에도 순순히 응하고,적은 임금에도 무조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산업의 역군. 이들의 안위를 위협한다는 간첩 중 다수가 정부 기관에 의한 조작간첩이었고, 그렇게 홍보했던국가 행사의 실질 효과는 증명되지 않은채 국격 높아진 국토에는 포탄이 떨어지는 현실에도, 국가가 말하는 안보 위기 담론에 순종하는 것이 미덕인현실이다.


 착한 시민을 양성하는 지배 카르텔 최대의 무기가 ‘정보’다. 정보를 독점한권력이 안보 위기라고 하면 그런줄 알아야 한다. 서해상 군사 갈등이 30년 넘게 지속되도 모두 북한의 도발행위지, NLL에 대한 한반도 내·외의합의가 한 번도 없었던 근본적 원인은 조명되지 않는다. 정부가 말한 대로 서해상 군사 완충지내가 존재하며 NLL 이남은 침범해서는 안되는 남한의영토인 것이다. 의혹이 제기되도 천안함 사건은 정부 발표대로 북측의 일방적 공격인 것이다. 이렇게 군, 나아가 정부 권력의 정보 독점에 대한 문민통제가 되지 않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군사 대국이자 정보 강국인 미국도 안보를 위해 군사 기밀주의가 강하다. 이라크 전에 파병된 미군의 민간인무차별 폭격 장면이 은폐될 뻔한 것도 군에 의한 정보 독점이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군 군사작전의 폭압성은 미국만이 알고 있을 뻔했다.


 정보 독점을 통한 권력의 전횡을 견제해야 할 언론은 제대로 기능하기 않고있다. NLL 지역의 근본 문제를 짚기는 커녕 북한을 규탄하고 위기 담론을 조성하는 정부發 입장만을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 특히 사주의 권력이막강한 대자본 보수 언론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G20 사업이나 4대강 사업 같이 찬반 여론이 나뉘는 정부 정책에도 비판보다는 정부 입장을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 官의 영향을 받는 유력 매체들의 모습이다. 얼마 전 한 언론감시 시민단체(언론개혁시민연대)에서는, 정부의 돈을 받고 정부사업에 우호적 기사와 칼럼을 내보낸 일간지들을 고발했을 정도로 언론은 권력 감시라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한국 군사 안보의 모델인 미국도 크게다르지 않다. 이라크 전의 정당성 여부나 군사 작전에 대한 합리적 비판보다 전쟁의 스펙터클을 부각시키는 것이 루퍼트 머독같은 사주가 운영하는 메이저매체들의 태도였다.


 위키리크스 같은 제3 섹터의 폭로 저널리즘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필요하다.언론이 자본과 권력을 대변하고, 본연의 비판 기능을 상실할 때 진정한 안보 위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위기를 활용한 정치를할 때 명분 없는 공격과 인명 살상이 이어짐을 우리는 목도해 오고 있다. 70년대 펜타곤 페이퍼 사건에 대한 美 대법원 판결도 그런 점을 표현한바 있다. “비밀주의에 의한 민주주의 침해가 안보 위기보다 더 위험하고 반민주적”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지금도 군사 및 정부의 비밀주의에 의한지배 방식 정당화와 그로 인한 “부수적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안보가 중요하다지만 시민은 알 권리가 더 소중한 때다. 위키리크스 외교문서 공개가 국가 안보에 위해가 된다며 미국은 간첩법으로 기소한다고 했지만, 이는 언론의 기능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보 독점 권력에 의해 체제의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 착한 시민으로만 사는 것이 진정한 위험이다.


 리영희 선생 말씀대로 “요즘 언론은 자유로운 인격체여야 할 국민을 노예로만든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 ‘착한 시민’을 양산하는 오늘, 위키리크스의 정보 공유는 민주적 힘으로 칼자루를 쥐게 해 준다. 위키리크스 같은대안 언론형 게릴라전이 필요한 때다. “마음도 예뻐야 (여자지)”라는 이상적 이성관은, “진실을 바로 보는 현명함이 있어야”로 바꿔야 할 때다.시민의 무지가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때다. 


통큰 치킨 논쟁의 실체는 이것이다.


 “천원 김밥,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자취생 친구의 푸념이었다. 싼 값에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에서, 의외의발언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도 높은 등록금과 월세를 고려하면 밥은 만만하게 김밥천국에서 먹기 쉽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물론 늘 싼 먹거리를찾아 먹어야 하는 처지와는 달리, 간혹 별미를 찾는 소비자에게 저가 김밥, 피자, 치킨은 기업이 말하는 저렴하고 상대적 양질인 서비스 제공이므로나쁠 것 없다. 하지만 자발적 저가 서비스 소비는 많지 않다.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50%를 넘어 일본, 미국 등과 현격하게 차이가 벌어진데서도 부가 집중된 상위 10% 이외 대다수 “서민”들이 내몰린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공장 양산형 싼 조미료로 맛을 낸 저가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하기 쉬운 이들에게 저가 패스트푸드는 서비스가 아니라 감내해야 할 모욕적 식사일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은 공정 경쟁을 통한 소비자 주권 실현이라고 하지만 사실과 반대다. 독점자본이 시장을 잠식해서 영세 업자를 몰락시키고, 결국 더 많은 소비자들이 어쩔 수 없이 싼 음식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 선의를 가장한구조적 폭력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살린 대형 유통업체 서비스에 비해 가격이 높을 수 밖에 없는 동네 재래시장, 치킨집,슈퍼마켓 등은 도무지 경쟁이 되지 않는다. 반면, 몰락한 영세 상인이 늘수록 저가상품 소비자는 늘어난다. 올해 5백만 명에 육박한 자영업자 중에서도음식점, 옷가게에 창업 업종이 몰려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대형 유통망으로 몰락해 그들 저가 소비자로 귀결되는 것은 심각한 사회 현상이다. 기업은나아가서 비정규직 확대 체제를 공고화 하는데도 저가 서비스 공급을 이용한다. 대기업 건설현장 인부들에게 나눠주는 점심 식권 대부분이 ‘OO천국’같은조미료 맛 저가 식품에 한정된 것을 봐도 대자본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더 많은 소비자들이 저가 음식 소비자로 전락하게 하는 것은 저임금비정규직 확대 같은 고용 유연화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 계열사 중 카드 부문의 고객이 돼 가계 대출까지 늘게 되는악순환이 반복된다.


 대형 유통업체의 시장 독점이 명백하게 폭압적인데도 불구, 저항하기가 어렵다.소비자에게 이롭지 않은데도 싼 제품을 찾을 수 밖에 없고, 개인 창업자에게 유리하지 않음에도 기업 프랜차이즈를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시장 구조가이미 만들어져 있다. 이번 통큰 치킨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의 마진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영세 창업 자본이 프랜차이즈를 찾을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2백개가 넘는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중에 매출액 상위 5개 업체가 전체 시장 수익의 60% 가까이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다섯 개 대형 업체가 시장 전체를 좌지우지 하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납입금 높은 프랜차이즈 업체와 손잡을 수 밖에없는 것이다. 해고나 노동유연화 정책 같은 불안정한 고용 조건 속에 영세 창업자는 늘어만 가는데, 자생적 개인 사업에 시장 생존은 그들에게 이렇게가혹하기만 하다. 소비자나 창업주나 이미 주도권을 선점하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가 짜놓은 판 속에 편입되지 않기란 근본적으로 어렵다. 이렇게 소수대자본이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는 애초부터 출발선이 다른, 공정하지 못한 시장 경쟁만을 부추긴다.


 악순환의 고리를 깨야 한다. 소수 대자본의 배만 불리는 불합리한 구조를 바꿔야공정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 「노동유연화 – 비정규직·소자본 창업자 증가 – 대형 유통망의 시장 잠식 – 동네 상권 몰락과 재정 불안 – 대출및 저가 서비스 소비자로 전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들 대자본이 저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소비자 주권이 존중되지 않음이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 침투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직시할 때다. 우선, 일반 거주단지 주변 상권에 대기업 유통망이 못 들어오도록, 또는자영업자가 몰리는 특정 업종이나 상품을 취급하지 못하도록 상생법·유통법을 현실화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영업자가 느는 고용 불안정 상황을 개선하기위해 토건 위주 경제 운용 방식을 지양하고, 부가가치(노동 창출 효과 등)가 높은 서비스업 비중을 높이도록 산업 및 고용 구조 개선에 앞장서야한다. 대기업 독주를 허용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상생과 지속 가능한 발전은 요원하다. 소비자가 저가 지향이 아니라 값 나가더라도 몸에 좋은 유기농식품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욕감을 주는 천원 김밥, 오천원 닭, 안녕.  



정치권의 복지 주창 신드롬, 뭐가 문제인가

 ‘평화 통일’

 지난 60여 년 간 대중의 지지를 받아온 구호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실현하는가에는 의견이 분분하다는 점이다. 53년 대선에서 ‘평화통일’을 구호로 내세운 조봉암과, 박정희가 70년대에 강조했던 ‘평화통일’은 분명 그 의미가다를 것이다. 김대중이 주창한 ‘평화통일’ 또한 달성 방식이나 그 계획에 있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정치인에게 분명 ‘평화통일’은 매력적인 구호였다.그러나 여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구체적 실현 계획을 표명한 정치인은 드물었다. ‘복지’ 구호도 마찬가지다. Publicwelfare 라는 개념을 서구에서 수입해 왔으나, 이를 통해 정치인이 주장하는 바는 천양지차다. 집권 수단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복지’, 즉 ‘대의’를 정치권이 과연 잘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역사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근 150여년 간 대중의 요구는 한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갑오농민전쟁을 벌였고, 식민 독재에 항거했고, 제왕적 국부 이승만을 권좌에서끌어내렸다. 30년 가까지 이어진 군부 독재를 투쟁으로 종식시킨 것도 소수만이 독점하는 권력의 군림에 대한 정의 구현이었다. 정치 민주화로 더많은 사람들이 정치 참여의 권리를 되찾았고, 이제는 독점적 자본 권력의 군림에 대한 투쟁만이 남았다. 공공(public)의 안녕(welfare)라는‘복지’의 확대를 저지하는 초법적 권력의 군림에 저항해온 역사를 생각할 때, 자본권력의 시장 왜곡과 잠식에 제동을 거는 것이 오늘날 필요한 복지실현의 첫 단추인 것이다. 전체 근로자의 절반 이상인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거대 자본의 시장 잠식과 편법 군림에 제동을 걸지 않는한 인간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복지의 기초 단계 실현 마저 요원하다.


 이미 정치권에는 희망이 없다. 집권 가능성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보수 양당이말뿐인 ‘복지’를 표현만 바꿔가며 정치 구호화 하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정치자금, 특히 선거 지원금 대부분이 국내 주요 독점 재벌 세력에서나온다는 사실도 근본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대선 불법자금 규모에서도 밝혀졌듯이 국내 10대 기업은 주요 정당들에게 적게는 수억,많게는 수백억 까지 ‘지원’하고 있다. 삼성 출신 진대제가 참여 정부 정통부 장관이 된 것처럼 기업과 주요 정당, 정부와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없는 현실이다. 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주요 재벌 기업들이 지원하는 한, 정치권의 복지 담론은 공염불일 뿐이다.


 실제로 기업은 복지 확대를 가만 보고 있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는 정부가국민연금의 보장 범위를 확대하려 할 때 가장 크게 반발했던 것이 삼성생명이었던 것, 장애인 2% 고용 법률을 지키는 대기업 사업장이 거의 없는것 등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국가의 보호 역할 확대 보다 민간 복지(보험)등 시장 활성화만을 추구하는 것이 명백하다. 게다가 이들이 제공하는 “완벽한”서비스에는 비인간적인 노동 통제가 감추어져 있다. 심지어 굴지의 기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조 결성 권리도 무시한다. 이들이 정치권의 최대 후원세력인 현 구조 하에서 정치권이 복지 확대를 주장하고, 현대차 등 비정규직 차별 철폐 같은 고용 복지 현안을 아무리 내세워도 표심을 위한 이미지정치 홍보 이상은 될 수 없다. 복지 노선으로 선회한 대표적 유력 정치인인 박근혜가 최근 공청회에서 구체적 복지관 설명 없이 지지자 악수만 하다간것에서 정치권의 복지 인플레가 속민 강정이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결국 복지 확대의 주체는 정치권도 아니고 언론의 촉구도 아니다. 지난한150여 년 복지 확대 투쟁, 기본권 보장 투쟁의 중심에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가 있어온 것처럼, 다수가 원하는 복지를 위해 연대해야 한다. ‘비정규직차별 철폐 20대 모임’이나, ‘이주노동자 복지 보장을 위한 다문화 가정 모임’, ‘중소기업 하청업체 노동자 모임’ 등 대다수 국민의 실질적 투쟁이없는 한 정치적 구호의 인플레로는 아무런 변화도 오지 않을 것이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가” 대의 민주주의는 기대할 수 없다. 정치권 믿지말고 스스로 움직일 때다. 복지 담론은 정치인을 통한 대리인 운동이 아니라 당사자 운동이 됐을 때 변화를 일굴 수 있다는 것이 지난 우리 역사의교훈이다. 승자독식의 구조적 폭력을 고발한 슬라보예 지젝이 저서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에서 “대중적 규율”이 필요하다고 한 대목을곱씹어야 할 때다.



공중파 재미 없잖아. 인터넷 방송으로.

 공중파 TV에서 과연 안티삼성을 논할 수 있을까. 적어도 삼성이 저지르는 비윤리적 경영행위나 불법 승계에 관해 제대로 알릴 수 있을까.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그렇지 않다. 기업 용돈(광고비 등등) 받는 언론의 현실이다. 대다수 신문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분명히 제한받고 있다. 

 현 정권 기간 중 공중파에서 무슨 이유로(?!) 갑자기 하차한 이들이 인터넷으로 자리를 옮겼다. KBS시사토론부터 MBC라디오 등 다양한 시사프로에 출연해 온 김종배 씨가 현 정권 들어 TV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지금은 프레시안에 시사평론을 연재하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온다. 외압설이 있었던 시사평론가 유창선 씨도 마찬가지. SBS, EBS 등지에서 라디오 프로도 진행하고 공중파 뉴스에도 종종 나와 정치 사안에 대해 논평도 하며 잘나갔던 그도 2008년 촛불정국을 기점으로 공중파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는 "이명박의 방송장악"을 원인으로 얘기한 바 있다. (인물과사상 2010년 7월호)

 여러 인터넷 망명처 중 내가 주목하는 곳은 "아프리카TV". 별풍녀들이 웃음 팔고 떼돈 버는 곳 아니냐고? 스타덕후들의 근거지 아니냐고? 뭐 그런 면도 있다. 그들은 아프리카티비의 모회사 '나우콤'의 Cash Cow다. 즉, '돈줄'로서 아프리카에 꼭 필요한 존재다.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프리카방송 지형도에서 소수이지만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정치적 발언자'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망치부인. 요새는 다소 욕설도 줄고 다이나믹함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정부비판적인 의견을 날카롭게 세우는 과감한 아주머니다. 주요 사회, 정치적 사안에 대해 논평도 하고 그냥 마구 욕도 한다. 물론 이유를 덧붙힌다. 일례로 연평도 포격 사건 때는, NLL 같이 잘 몰랐던 분야도 과감하게 일단 의견을 표명했다. 똑똑한 침묵자보다 좀 부족한 참여자가 더 낫지 않은가! 당시 망치부인은 NLL관련해서 정사갤 친구들이 제대로 모르면서 헛소리 한다고 한번 털러 왔을 때, 대범하게 대처했다. 그분들이 지적해준 덕분에 비판 받은 대목들을 열심히 공부해서 NLL 문제에 대해 제대로 얘기할 수 있게 됐다며 방송을 했다. 
 
 둘째, 유창선의 시사난타. 매일 밤 11시에 방송한다. 한미 FTA나 국회 예산안 파동 등, 공중파 방송에서 다루지 않는 비판적 시선과 취재 내용을 공유한다. 공중파에서 쫓겨난 이후 인터넷 방송과 블로그 등지에 둥지를 튼 그가 "망명지가 아니라 새로운 근거지"라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꽤 인기 많다. 
 
  셋째, BJ왕쥬. 남성이 원하는 여성적 이미지를 과감하게 탈피해, 먹고싶은 대로 과식하고 트림하고 욕하는 여성BJ이다. '여성성'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反마초적 반항행위로 볼 수 있다. (그에게 그런 의도가 없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런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별풍녀들이 여성스러운 외모와 적절한 애교를 내세워 별풍선과 출석체크를 "구걸"한다고 비판받을 때, 혜성같이 등장한 왕쥬의 위엄. 한달에 수백, 수천만원 씩 번다는 얼짱 BJ들-김이브나 잉잉, 한나 등등-이 독점했던 '외모자본의 현금화'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초췌하게 잠옷 입고 방송에서 맨날 하는 것이 피자 한판 먹기, 콜라 먹고 트림 하기 등등 다소 비위에 거슬릴 수 있는 행동임에도 시청자가 방장제한 수에 꽉 차고 별풍선, 출석체크 수도 얼짱 BJ에 뒤지지 않는다. 아프리카 내 일종의 컬트문화가 메이저급 파급력을 보여주는 이례적인 사례다. 정치적 발언자는 아니지만 사회가 종용하는 여성성을 거부한 표현자이자 행위자라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언론, 특히 보수 매체에서 다뤄지지 않는 인물, 사안, 의견, 트렌드가 발언권을 얻는다는 점에서 아프리카 같은 인터넷 방송은 대안언론, 또는 담론의 장 기능을 하고 있다. 앞으로 더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망치부인과 분노하고, 유창선과 차분하게 사안을 돌아보고, 왕쥬와 폭식하고 싶다. 어제 아프리카에서 방송된 김상봉의 <굿바이 삼성> 출간 기념 강연처럼 反재벌적 목소리도 면밀하게 살펴보고 공유하고 싶다. 

  내가 시사프로 몇개 빼고 공중파 방송은 안보지만 인터넷 방송은 종종 보는 이유다. 공중파에서는 그나마 보던 시사프로들도 위기다. PD수첩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이 방송 연기 됐던 것도 그렇고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 편이 방송연기 될 뻔했던 상황, 이번에 추적 60분 <4대강> 편이 불방돼 "김인규 물러나라"는 막내PD의 주장까지 나온 것을 보면 문제가 많다.

 좀 이따 왕쥬나 잠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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