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번스타인은 19세기 초 뉴욕 필하모닉을 세계적 수준의오케스트라 반열에 올려 놨다. 그의 인기는 지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연에앞서 청중에게 연주할 곡과 작곡가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해설가(commentator)형지휘자’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것도 많은 사랑을 받게 했다. 뉴스의 지휘자인 ‘앵커’도 주관적 코멘트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애초에앵커 자리는 단순한 전달자 역할로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앵커의 전형을 만든 것이 美 CBS 출신 전설적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이다.그가 앵커 역사상 최초로 보도국장 겸직을 조건으로 내건 것은 뉴스 생산 보도에 보다 깊숙히 관여하기 위해서였다.
국내 뉴스 생산에서 앵커의 역할도 대개 그런 미국식 보도 구조와 다르지 않다. 대부분 보도국장 같은 보도국 내보직을 겸한다. 뉴스 선별, 편집과 같은 데스킹 기능에 앵커가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구조다. ‘관점이 전적으로 배제된 객관적 전달’이 앵커의존재 이유가 아님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앵커’라는 자리 자체가 뉴스 보도 전반에 의견을 게재하는 보도 지휘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입장도밝히고 클로징에서 주관적 논평으로 마무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가’의 기능은 앵커 고유의 권한이다. 다만이는 가장 기본적인 언론의 기능인 ‘권력 견제’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한에서 발휘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앵커의 한마디 한마디가전국권 방송의 영향력을 통한 정치적 자산화 될 수 있어서, 특정 정파 편향적 보도는 권한 남용이 될 수 있다.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해서 얻은 공정한 보도 지휘자의 이미지를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공익을위한 독립적 방송임을 자처하면서 결국 특정 정당, 정부 요직으로 진출한다면 과연 그의 보도와 뉴스해설이 공정 보도였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대통령 선거 당시 언론 특보에서 부터 정권 출범 이후 정부 대변인이나 여당 공천 인사까지, 앵커나 아나운서, 기자 등 언론인 출신 정치 인사는현 정권 들어 이례적으로 100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집계된 만큼 정언유착의 징후는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 정치 관련 보도나 논평을 하던 앵커나기자가 하루 아침에 정당인으로 갈아탄다면 그 전의 보도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공기(公器)로서의 언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이자 언론의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사익 추구 활동이다.
독립적 언론인으로서 앵커의 재미있는 논평, 주관적 해설은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 단, 앵커나 기자 같은 언론인이하루 아침에 폴리널리스트로 표변할 가능성이 원천 봉쇄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공직선거법에서 언론인에게 제시하는, 선거일 전 최소 90일 전까지는그 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조건을 언론사내 윤리 강령에도 명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속력 있는 제재를 가해야 한다. 냉각기 없이 정계에 진출하는폴리널리스트 명단을 언론 공개하고 그 심각성을 보도하는 등의 제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이 뒷받침된다면, 최일구 앵커 식의 재미있는 해설식 뉴스보도는 허용돼야 한다.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앵커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하며 객관적 전달자 역할만 하라고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적강압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번스타인 같은 훌륭한 보도 데스크 지휘자이자 ‘커멘테이터’로서 앵커가 기능할 수 있도록 성숙한 언론 제도·인식을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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